1953 ~ 2014
여성의 존엄한 삶을 위하여

사회복지법인 W-ing은 여성들의 인간답고 존엄한 삶을 지향합니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적인 악습이 잔존하는 한, 경제적 불평등이 우선적으로 여성들의 가난으로 전가되는 한, 권력적인 다수자가 여성이라는 소수자에 대해 폭력적인 지배를 관철하는 한 여성의 삶은 언제든 비인간적이고 비참한 삶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가부장 제도나 경제적 빈곤, 남성의 폭력성에 기대어 지금 이 순간의 삶을 황폐하게 방치해서도 안 됩니다. 따라서 W-ing은 보호만 받는 여성, 보호에만 의지하려는 여성을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다수자는 결코 알 수 없는 삶의 고통, 소수자이기에 더욱 민감하게 경험할 수밖에 없는 폭력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삶과 왜곡된 삶에 대한 이런 민감함과 섬세함이야말로 위대한 여성적 가치이므로 여성이 존엄한 삶을 구성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인간이 존엄한 삶을 누리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W-ing은 상처 입은 여성, 가난한 여성, 소외된 여성들이 그 상처와 가난과 소외를 오히려 삶의 자산으로 만들고, 그 자산을 받침돌로 하여 존엄하고 아름다운 삶의 건축물을 쌓아올리기를 원합니다.

1953 ~ 2002
요보호 여성의 시대

사회복지법인 W-ing의 초기 역사는 빈곤여성과 일명 ‘요보호(要保護) 여성’을 대상으로 한 복지사업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 시작은 <데레사모자원>이다. 백수남원장이 한국전쟁 직후에 설립한 <데레사모자원>(1953. 10)은 전쟁으로 인해 고아가 된 아이들이나 어머니들을 위해 모자(母子)보호사업에 주력했다. 전쟁의 상흔이 걷혀가고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산업화 시대인 1960년대엔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나이 어린 여성들이 윤락행위 등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미용이나 양재, 가정부교육과 같은 직업훈련이 <은성직업보도소>(1966. 4. <데레사모자원>이 그 전신(前身))에서 실시되었다. 1976년 5월에 <사회복지법인 은성원>이 탄생했고, 1986년 2월에는 <은성직업보도소>가 <은성직업기술원>으로 바뀌면서 미혼모를 보호하는 사업이 추가되었다. 1992년 5월에는 다시 저소득여성을 위한 직업훈련이 중심적인 복지 사업이 되었고, 1995년에 발생했던 <경기여자기술학원> 화재 사건(37명의 여성 사망)을 계기로 개정된 「윤락행위등방지법」(1995. 1)에 따라 1996년 12월에 직업보도시설에서 윤락여성과 윤락우려여성을 위한 선도보호시설로 전환된다. 최주찬 <은성원> 2대 원장은 1998년부터 어려운 이웃들에게 식품을 나눠주는 <푸드뱅크> 사업에 주력했다.

2002 ~ 2006
피해 여성의 시대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윤락행위를 방지”하고자 제정된 「윤방법」이 성에 대한 도덕적이고 금욕적인 접근이었다면, 군산 대명동(2000)과 개복동(2002) 화재사건을 계기로 제정된 「성매매방지법」(2004. 3)은 ‘피해 여성’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여성이 남성중심적인 사회의 희생자임을 강조했다. 일명 ‘피해 여성’의 시대인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W-ing의 사업도 재정비된다. 탈성매매여성들을 위한 <다시함께쉼터>(2003. 9. 서울시 위탁)를 개소했고, 이 여성들의 자립을 위해 창업을 지원했는데, 그 1호점이 피부관리숍인 <휴 스킨&바디>(2005. 2)였다. 2005년 3월엔 선도보호시설 <은성원>에서 탈성매매여성들의 쉼터 <은성원>으로 전환되었고, 직업을 갖게 된 여성들을 위한 그룹홈 (2005. 9), 실무자가 거주하지 않고 여성들이 자주적으로 주거 실험을 하는 독립형그룹홈(2006. 11)도 갖춰졌다. 피해여성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었는데, 대표적으로 피해여성들이 직접 말하고 찍는 <치유적 글쓰기 워크숍>(2005. 7)과 <영상시사회: 빛으로 만나는 세상>(2005. 9)이 있다.

2006년 1월에는 비영리조직컨설팅을 통해 기존의 시혜적인 ‘복지시설’에서 여성 내면의 힘을 키우고 경제적 독립을 위한 ‘센터’로 전환하였다. 같은 해 3월에 <인문학아카데미>가 처음으로 시작되었으며, 4월에는 여성의 주도적이고 성공적인 삶을 뜻하는 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쓰게 된다.

2006 ~ 현재
일하는 여성의 시대

요보호 여성과 피해 여성의 시대를 지나 ‘일하는 여성’을 모토로 자활지원센터 <여성성공센터W-ing>(2007. 7. 최정은 대표)을 시작한다. ‘요보호 여성’이 여성에 대해 도덕적인 낙인을 찍어서 문제였다면, ‘피해 여성’은 피해만을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여성의 주체적 자립을 제한한다는 다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떳떳이 일하고 일을 통해 여성의 존엄을 확보하자는 신념으로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었다. <여성영상미디어센터>(2006), <친환경핸드메이드사업단>(2007. 7), 대안문화공간을 지향하는 커피점 <신길동그가게>(2008. 3), 목공작업장 <뚝딱뚝딱>(2008. 12), 오프라인매장 <핸드메이드숍 1953>(2009. 10), 대안문화공간 2호점 <상수동그가게>(2010. 3), 위기청소녀들의 자립실험실 <조잘조잘분식집>(2010. 11)이 그것이다. 피해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을 보호만 하고 쉬게만 하는 시스템이 여성의 자립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과감히 <쉼터 W-ing>을 접고(2011. 8) 일 중심의 자활지원센터에 집중한다. 그 결과 핸드메이드제품들이 온라인 쇼핑몰 <이로운몰>과 <핑거팝>, <스마일포유>에 입점하게 되었고, (주)농심 <메가마트>와 <행복중심생협>에 수제수세미를 납품하고 있으며, 여성폭력쉼터 여성들에게도 일거리를 마련해주는 수세미 외주제작도 실시하고 있다. 쉼터나 그룹홈과 같이 의존적인 주거의 형태를 벗어나고자 SH공사로부터 다세대주택(8세대)을 위탁받아 소외된 여성들이 적은 비용으로 살 수 있는 임대주택 <상도동우리집>(2008. 11. 현재 20여 명 거주)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2009년부터는 인문학자와 함께 다른 삶의 가능성을 배우고 삶에 대해 전체적으로 통찰할 수 있기 위해 <인문학아카데미>를 통해 니체와 스피노자의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복지현장이 위안과 사랑만을 강조해왔다면 W-ing은 능동적 신체에 능동적 영혼이 깃든다는 스피노자의 테제 아래 매주 인문학을 공부하고 등산을 다닌다.

*1953년부터 현재까지 W-ing을 거쳐 갔거나 머무르고 있는 여성들은 모두 3,500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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